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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1박2일

한반도 생태계의 보고, DMZ생태평화공원

1일차

 

  • 버스 이동
  • 군남댐 ~ 옥녀봉 ~ 옥계리
  • 중식 : 부녀회 제공
  • 옥계리 ~ 망곡산 ~ 연천 급수탑 또는 신망리역
  • 소이산 & 노동당사(군 사정시 변경)
  • 석식 : 민통선마을
  • 민통선마을 숙소

2일차

 

  • 조식
  • 용양보 & 십자탑 탐방로
  • 중식
  • 버스 이동 – 귀가

※ 상황에 따라 2일차 오후 민통선 구간 방문

 

옥계리

옥녀봉 밑에 옥같이 맑은 냇물이 흐르는 곳이라 하여 옥계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진전리를 병합하여 군남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개암밭골(榛田里), 관말(官村), 독짓골(탁거리), 미래, 새말(新垈洞), 옥계역터(玉溪驛址), 온수골(溫水洞), 윗말(上洞), 중간말 등이 있다. 개암밭골은 옛날에 개암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관말은 중간말 북쪽에 있던 마을로, 고려 말 연주현의 관아가 위치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독짓골은 장거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미래는 궁예가 세운 태봉국이 철원에 있었을 때 이곳까지 조수가 들어와 수운을 이용하려 했으나, 전방에 조그만 언덕이 가로막혀 있어 통행이 어려웠던 곳이다. 이 때 여러 명이 힘을 모아 배를 밀며 언덕을 넘어다녔다 하여 밀어고개로 불리다가, 차츰 미래고개라 하게 되었다 한다.

노동당사

분단된 남·북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건물에서 남과 북으로 분단된 현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철원지역은 해방 후 북한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되는데 그때 지어진 노동당 철원군 당사 건물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파괴되고 지금은 건물 외벽만이 보존되고 있다. 외벽의 포탄흔적은 한국전쟁 때의 상처이다.

골조에 나 있는 창의 형태를 보면 이 건물은 원래 3층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1층만 방이 남아 있고, 2·3층은 무너져 버려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1층의 방은 밖에서 볼 때와 달리 크기가 작은데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 궁금하다. 해방 후 외국에서 활동하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귀국을 하면서 좌·우의 노선 경쟁이 치열해지고, 남쪽에는 미국이, 북쪽에는 소련이 진주하게 되니, 그 갈등은 하나로 모아지지 못하고 전쟁이라는 비극을 낳는다. 철원 노동당사가 사용된 기간은 해방 후에서 한국전쟁까지의 시기라 하겠다.

1개 리당 쌀 200가마씩을 거두어들여 이 건물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건물의 보안유지를 위하여 공산당원 이외에는 건축에 참가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공산주의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고문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가 있었다. 바로 9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 때문인데 그들의 노래인 ‘발해를 꿈꾸며’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곳이 바로 여기이다.

용양보

군사지역이라 일반에 공개가 되지않던 곳인 철원의 용양보에 “DMZ생태평화공원” 탐방로가 생겼다. 이제는 일반인도 신청하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 곳에 용양보가 있고 용양보 가운데 끊어진 다리가 있다. 가마우지가 물고기 사냥 전진기지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