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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DMZ 체험 1박2일

서부전선 최전방에서 통일을 염원하다

1일차

 

  • 버스 이동(합정역 ~ 임진각)
  • 땅굴체험
  • 도라산 전망대
  • 중식(민통선마을 부녀회운영)
  • 도라산역 & 도라산공원
  • 캠프그리브스(군복체험, 태후체험)
  • 석식

2일차

 

  • 조식
  • 허준묘, 덕진산성
  • 중식(두부전골 – 장단가든)
  • 이동(합정역)

 

 

 

※ 군사 작전지역이므로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매점은 면세가 아닙니다.
※ 캠프 그리브스는 유스호스텔이며 수건, 비누, 칫솔, 치약 등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샴푸, 린스, 바디워시, 물비누 제공)

 

■ 준 비 물
○ 인솔자, 참가자(성인) 신분증실물 필수 지참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 세면도구(수건, 칫솔, 치약 등), 개인 복용약, 여벌의 옷, 그 외 필요물품

도라산전망대

서부전선 군사분계선 최북단에 자리 잡고 있다. 송악산 OP(Observation Post; 관측소)가 폐쇄된 후 1986년 사업비 약 3억 원을 들여 국방부가 설치한 통일안보관광지이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1987년 1월부터이다.

건물총면적은 803.31m²로, 관람석(500석)·VIP실·상황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망원경 수십 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개성공단과 개성시 변두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며, 그밖에 송악산·금암골(협동농장)·장단역·북한선전마을 기정동·김일성 동상 등이 바라다 보인다.

허준묘

분단된 남·북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어떤 이들은 허준의 본관이 양천이므로 그의 고향이 경기도 김포지역 가양동 공암(지금의 강서 양천구 포함)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1930년도의 국세조사를 집대성한 <조선의 성(朝鮮の姓: 1934년)>을 보면 경기도 김포지역(지금의 강서·양천구 포함)에는 허씨 집성촌이 하나도 없었다. 더군다나 공암 주변은 1920년대까지도 집이 전혀 없었다.

의성 허준묘가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982년 이양재씨는 한 통의 간찰을 입수했다. “7월 17일 허준배(許浚拜). 비가 와서 길을 떠나지 못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허씨대종회를 찾아가 종친회 족보를 뒤적여 준(浚)자를 썼던 사람을 찾던 중 한국전쟁 이후 실전된 허준의 묘가 ‘장단 하포 광암동 선좌 쌍분’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그는 허준 선생의 묘소를 찾기 위해 일제시대 토지대장을 확인하던 중 1991년 9월 하포리에서 허준의 종손인 허형욱(1924~?)의 이름을 찾았고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허씨들이 모여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옛 땅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무덤이란 무덤은 모두 도굴돼 있었는데 그 중 한 무덤이 유독 눈길을 끌었고 무덤 주변을 파던 중 두 쪽으로 동강난 비석이 나왔다. 비석에 명문이 새겨져 있었고 내용은 바로 ‘양평군 호성공신 허준’이었다. 이렇게 허준묘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제3땅굴

제3땅굴은 1974년 9월 5일 귀순한 북한의 김부성씨에 의해 땅굴공사 첩보를 근거로 1975년부터 문산 지역에 대한 시추작업을 하였으나 땅굴을 포착하진 못했다.

그 후인 1978년 6월 10일 새벽, 현장의 탐사반은 땅굴의 시추공 중 1개에서 폭음과 함께 물길이 솓는 것을 발견한다. 당시 전두환 제1보병사단장이 보고받아 주변지역에서 역갱도 굴착 공사를 실시해 제3땅굴이 발견되었다.